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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4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을 위한 군사활동 [키워드한국사]

보도본부 | 이호 기자

기사승인 2018.01.07  17: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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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디자인 이정선]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외교활동과 더불어 군사활동도 병행하였다. 

임시정부는 1919년 12월부터 군사활동계획을 수립하였고 같은해 말에는 상해에 육군무관학교를 설립하고 3기생까지 모집하였다.

1920년 1월 13일에는 ‘국무원 포고 제1호’를 통해 러시아와 만주 지역 동포들에게 독립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군대양성과 조직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또한 공군 창설을 위해 군무총장 노백린이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주 윌로우스에 비행사양성소를 설립하였지만 재정난에 의해 상해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와 함께 폐교되어 버렸다. 

임시정부는 독립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4가지 방책을 수립했다. 

첫째는 제도와 법령의 마련. 둘째는 국내 지역에 군사 기초 조직 결성. 셋째는 육군무관학교를 설립하여 군사 간부 양성. 넷째는 직할부대를 조직하거나 기존의 독립군을 임시정부 산하에 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임시정부는 대한독립애국단(일명 철원애국단), 조선민족대동단, 대한민국청년외교단,  대한민국애국부인회, 대한국민회 등의 비밀결사 조직과 연계하였고 만주에서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를 임시정부 군무부 산하로 편입시켰다. 

또한 서간도에서는 대한청년연합회 의용대, 한국독립군비단, 대한독립단 등을 통합하여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을 조직하고, 주만참의부(駐滿參議府)를 설치하였다. 

대한광복군총영은 1920년 5월 상하이에서 안창호, 김희선, 이탁 등이 논의를 시작해 6월 남만주에서 대한독립단과 대한청년단연합회의용대가 합쳐 결성된 것으로 안주, 신의주, 선천 등의 지역에서 조선총독부 기관을 폭파하고 다수의 조선총독부경찰과 조선총독부의 앞잡이를 처단하여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또한 임시정부는 의용단이라는 비밀결사단체를 조직하여 국내의 군사 활동을 꾀했는데 단장인 김석황과 의용단원 13명이 1920년 9월에 경찰에 검거되며 와해되고 말았다.

그 후에도 여러 활동을 해 왔지만 임시정부는 사실상 외교활동에 더 큰 비중을 두었고 결국 정식 군대인 한국광복군은 충칭으로 청사를 옮긴 1940년에 이르러서야 창설되었다.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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