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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5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임시정부의 이동 [키워드한국사]

보도본부 | 이호 기자

기사승인 2018.01.14  17: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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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디자인 이정선] 임시정부는 중국 상하이에 있는 프랑스 조차지역에 세워졌지만 일제가 프랑스 정부를 협박하여 임시정부의 요인을 체포하려는 시도를 했다. 이 과정에서 도산 안창호가 체포되었고 대부분의 요인들은 항주 등으로 피신을 해야 했다.

이로 인해 1932년부터 임시정부는 1940년 충칭에 정착하기 전까지 중국 각지를 떠돌아다니는 이동시기를 맞게 된다.

조선민족혁명당(1935년 7월)은 혁명적 수단으로 국토와 주권을 회복하고 정치, 경제, 교육의 평등에 기초를 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해 만들어진 당으로 임시정부를 지탱하고 있던 한국독립당이 여기에 가담하면서 임시정부 해체를 주장하자 임시정부는 존폐의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김구는 1935년 11월 한국국민당을 조직하여 이를 기반으로 임시정부를 재정비해 존폐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임시정부는 한국국민당을 기초세력으로 운영 유지되어 한국국민당과 조선민족혁명당이 중국 관내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1940년 우파 3당은 통합하여 한국독립당을 결성하였고 임시정부의 세력 기반을 확대했다. 그리고 1940년 9월 17일에는 충칭에 도착하여 국군이자 당군으로서 광복군을 창설하게 된다.

1940년 10월에는 제 4차 개헌을 통해 집행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무위원제를 주석제로 바꾸고 김구가 그 자리에 올랐다. 이로써 임시정부는 정부와 한국독립당, 광복군 체제가 완성되어 정, 당, 군의 삼위일체제를 확립하게 된다.

또한 1941년 11월에는 정치이념과 독립 전쟁 준비태세를 천명하는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발표했다. 이 강령은 삼균주의를 이론적 기초로 삼았는데 민족 내부에 정치, 경제, 교육의 평등을 실현하여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모순을 제거하고 세계 인류의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의 평등을 실현하자는 논리였다. 강령은 또한 국토를 탈환하는 과정을 담은 복국과 해방된 조국에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는 건국단계를 제시하였다.

또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요소를 포괄하는 형태를 제시함으로써 민족전선통일을 위한 이념적인 토대를 세웠다.

임시정부는 일제의 끈질기고 집요한 추적을 피해 여러 곳을 이동하였고 1940년 충칭에 자리를 잡으면서 재정비를 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자리를 잡은 임시정부는 더욱 활발한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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