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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3 시련을 거친 독립군의 정비, 3부의 형성과 통합 [키워드한국사]

보도본부 | 이호 기자

기사승인 2018.03.11  17:5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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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디자인 이정선] 자유시 참변(1921년 6월 28일)으로 인해 독립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에 독립군의 조직을 정비하고 역량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는데 이에 통합 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남만주에서는 대한독립군비단, 흥업단, 광복단의 일부가 모여 대한국민단을 결성하였고(1921년 말) 서로군정서, 대한독립단, 광한단 등은 환인에서 남만통일회를 결성하여 대한통군부(1922.3)를 조직하였으며 곧 대한통의부(1922.8)로 발전하였다. 

대한통의부에서 김선풍과 채찬 등은 임시정부 산하로 만주의 전독립군단을 통합해야 된다는 원칙을 피력하고 대한통의부를 이탈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1924.1)를 조직하게 된다. 

통의부 지도자들은 남만주 지역의 군소 무장세력으로 남아 있는 독립군단들을 통합할 것을 계획하여 8개 독립 운동단체가 통합하여 정의부(1924.11) 자유시 참변을 겪고 돌아오거나 북만주에 잔류했던 대한독립군단이 중심이 되어 부여족통일회의를 개최, 신민부(1925.3)를 조직하게 된다. 

이처럼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를 3부라 하며 이들은 단순한 독립 운동단체가 아니라 자치 행정을 맡아 보는 민정 조직과 독립군의 훈련과 작전을 담당하는 군정 조직, 행정·입법·사법부를 구성하여 공화주의적 자치 정부의 성격을 갖추었다. 

일제가 이런 3부의 조직을 그저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일제는 3부 중심의 독립군을 탄압하기 위하여 만주의 군벌 장쭤린과 총독부의 미쓰야 사이에 현상금을 건 미쓰야 협정을 체결한다. 미쓰야 협정(1925.6)의 주요 내용은 중국측이 재만한인에 대해 호구조사를 철저히 실시하여 감시하고 반일 운동자들을 발견하면 무장해제를 시킨 후 일본에 인도를 할 것이며 그 대가로 일본이 중국 영토를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3부의 통합의 필요성을 느낀 정의부는 3부의 통합을 위한 회합을 길림에서 개최하였다. 하지만 단체 중심 조직론을 주장하는 정의부의 입장을 참의부와 신민부가 반대하여 통합은 실패하였으며 이후 3부는 촉성회 계열의 혁신의회와 협의회 계열의 국민부로 통합되었다.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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